환절기

너무 이른 더위였다. 열대야가 시작되었던 밤,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열지 못한 채 피곤한 상태로 깨어있어야 했다. 이상한 열기를 잠재운 것은 냉수 샤워였다. 그러나 이른 더위 만큼 냉수 샤워 역시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리고 기절한 듯 잠들었다.

흡사 공포 영화 속 분위기다.

깨고 난 뒤 세상은 흐렸고 비가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장마철처럼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지금 이 이상한 열기를 식히는 것은 계속 해서 찬 기운이다.

모기 때문에 잠을 깬 것은 새벽 3시 30분 무렵이었다.

계절감을 상실한 기후의 변화 때문에 며칠 사이 여름과 겨울을 오가고 있다.

그러나 잠들지 않는, 한밤 중에도 고양이가 날카롭게 울고 시끄럽게 오토바이와 차 소리가 들리는 이 도시에도 아주 잠깐 어떤 고요한 정적이 찾아온다.

새벽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온갖 새들이 아침을 알리기 직전 떠가는 하늘의 구름을 보면 세상이 아직은 괜찮고 평화롭기까지 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잠을 깨우는 모든 것들을 잊게 만들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게 해준다.

그리고 잊고 있던, 아주 오래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기억나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사랑하고 잃었는지 아주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잊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변한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고 변하지 않는 내가 이상해진 것 같이 바뀌어버렸다. 그러나 그 역시 진짜라기 보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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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 중 대부분은 사람들이다. 아주 단순한 진리다.

사랑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더 많이 요구하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설득, 강요하려 한다. 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왜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자유롭기 위해 태어났는데 왜 언제나 사랑과 우정의 이름으로 옭아매려 하는가.

걸으면 필요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건강한 다리와 생수 정도만 필요하다. 물론 걸을 수 있는 좋은 날이어야 하고. 한참을 걷다 보면 힘들게 했던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나 걷기와 산책만으로 일상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왜 갇힌 사람들은 자신 안에만 머무르길 원하는 것일까.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왜 자신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과거의 자신과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망상의 첫번째 신호다.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아마 가장 두려운 것이 아닐까. 혼자라는 절대적인 외로움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것도 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시간이 흘러도 멈춰진 시간안에 머물게 된다.

왜 이 고요한 평화에서 쉬지 못하는 것일까.

편안한 하루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루라는 시간의 순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을 만큼 하면 되는 것이다.

밤이 찾아와서 하루의 피로감에 눈을 감고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 줄 아는가.

무엇인가 더 찾고 싶은 것은 아마도 자신이 속한 현재가 평화를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안주하면서 긴장감을 갖고 싶어 새로움을 원하는 것이 아닐테니.

쉬운 일들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유한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래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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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일들이 스트레스가 쌓이면 더이상 깨어있기 싫어 잠이 든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새벽의 시간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앉으면 세상이 참 평화롭다. 이 고요함을 좋아한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새벽의 서늘한 공기도 좋다. 그 어떤 것들로부터 해방된 시간이다. 괴롭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침범받지 않고 자유로운 시간이다. 그렇게 누워 천장을 보면 그 시간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은은하게 울리는 음악들도 마찬가지다. 약간 멜랑콜리한 선율의 음악들이 내 방을 따스하게 감싼다.

매년 작년의 오늘과 경쟁하는 것 같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산책으로 아름다운 날을 만들 수 있는데 올해는 유독 날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조카의 시간이 허락되어 같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들은 그 자체로 고맙다.

친구가 없는 삶을 한 4년 정도 살아가는 것 같다. 사랑해서, 좋아해서 기대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꼭 그 만큼은 외롭지 않다. 사람이 생기면 아무리 마음을 비운다 하더라도 외로움은 더 크게 찾아오는 법이다. 아직까지는 내 시간을 방해받지 않아서 좋다.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여기, 저기, 이런 일, 저런 일,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치였던 일들로부터 자유롭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확실히 중년의 시기가 오면 큰 고비를 맞이하며 인간 관계가 정리가 된다. 불가피한 일이다. 물론 정리를 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그 안에서 매일 똑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차피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무심했다는 의미다.

지나가듯 조카가 스타벅스 카드를 충전해서 선물로 준다. 나를 아는 정말 소수의 몇몇만 그런 선물을 한다. 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혹 그런 나를 알더라도 내가 가진 것들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경쟁하길 좋아했던 지나간 사람들은 결코 그런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게 될수록 이전과 같은 소비 생활에서는 멀어지게 되더라. 살림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조금 제한된 금액에서 조금 더 흐트러짐 없이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혹을 견뎌야 하고 제대로 된 소비를 선택해야 한다. 2천원을 넘지 않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벌써 몇 년 된 일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스벅도 돈이 아까워 가지 않게 된 것이다. 스벅을 갈만한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없는 살림에 늘 지켰던 나만의 작은 호사를 더 누릴만한 여력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즐길 만큼 즐겼다는 생각이 더 먼저 찾아왔다. 사실 내 마음이 먼저 떠난 것이다. 오래 가지 않는 재미와 즐거움을 반복하다 보면 더 쉽게 권태로워지니까 끊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전망 좋은 카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한가롭게 앉아 그 시간의 평화를 느끼는 것을 사랑한다. 그런 마음이 찾아오면 좋았던 옛 일도 다시 기억나고 그리워지기도 한다. 좋았던 적이 참 많았다. 힘든 순간들과 시련과 고통의 시간들을 잊게 만든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것이다.

<나의 특별한 형제>를 봤을 때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책임의 집'이 지켜지는 것을 확인했다. 세상에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보금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지만 지켜주는 사람은 많이 없다. 그래서 서로를 지켜주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이고 내 가족이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그런 이야기였다.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 살아보니 끝은 너무 쉽더라. 끝내지 않고 인내하며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사실 더 힘들었던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본다.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던 내가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결국 그 자신들이 해내야 하는 일이다.

산책하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낮의 시간은 아니지만 고요한 나만의 이 새벽이 정말 고맙다. 고마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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