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꽤 탁월한 리메이크작이다. 그러나 원작을 충분히 알고 보지 못한다면 용어나 스토리를 이해하기에는 어느 정도 불충분한 감이 있다. 대신 원작을 아는 관객들에게는 리메이크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원작이 충분히 다루지 않은 인물들의 심리를 쫓아간다. '두더지'는 스릴러 장르의 표면에 해당되는 맥거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사를 충실히 따라간 사람들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결국 다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1960년대말 냉전의 퇴물로 사라질 스파이들의 운명을 쓸쓸하게 관조하면서 아직 브로맨스가 등장하지 않는 시대의 사나이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스파이 스릴러의 브로맨스 멜로 드라마라고 보면 된다. <셜록 홈즈>와 비슷한 맥락이다. 또는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1999)가 떠오르기도 한다. 남성 전유의 장르라 할 수 있는 사무라이 영화에서 미모의 소년의 등장으로 조직을 붕괴시키고 와해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정과 충성을 벗어날 때 남성간의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유난히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묘사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시선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은밀하게 스릴러에 침입한 퀴어 스파이 멜로 드라마고 볼 수 있다. 이 브로맨스가 치명적인 것은 목숨 건 믿음과 사랑 그리고 우정을 말하기 때문이다.
at 2012/02/09 17:42



덧글
잠본이 2012/02/12 22:16 #
홈즈가 브로맨스 시트콤이라면 이건 정말 멜로드라마 맞는듯 합니다. OTL
somewhere 2012/02/12 23:26 #
<셜록 홈즈>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정말 가장 대중적인 상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퀴어 영화라고 보는데 사람들이 아직 충분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정말로 이상했어요. <팅커~>의 경우는 정말 남자들간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심리를 파고드는 멜로 드라마인데 별다른 반응이 보이지 않더군요.사실 저는 이 글을 더 깊게 들어가서 적을 수 있었는데 아무 반응이 오지 않아서 쓰지 않았는데 같이 본 누나한테 이 영화의 인물간의 러브 라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니까 놀라더군요. 다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당고 2012/02/15 02:57 #
방금 보고 왔어요.정확히 퀴어 멜로입니다.
저와 같이 본 사람도 나오자마자 그 얘기를 하더군요.
somewhere님이 이 글을 써주셔서 참 좋아요 :)
당고 2012/02/15 03:03 #
<렛미인>에서도 감독이 퀴어에 주목하는 게 확연히 드러났잖아요.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somewhere 2012/02/15 03:14 #
심야 상영이 있었나봐요.방금 보고 오셨다고 하니. ㅋ사수-부사수의 개념으로 남자들만 존재하는 조직에서 이른바 라인의 중요성을 재인식시켜주는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은밀하게 깔려있는 것은 남자들간의 우정과 신념을 위장한 사랑놀이였어요. 지독하게.
결국 컨트롤과 조지 스마일리 그리고 조지 스마일리와 피터 길리엄으로 이어지는 이상야릇한 믿음의 관계도와 빌 헤이든과 짐 프리도의 직접적인 동성애적인 관계.
가장 중요한 핵심은 왜 우정을 배신한 남자는 죽어야 하는 것인가 였어요. 그 부분이 너무 감정적으로 쎄서 단순한 남자 드라마가 아니라고 봤거든요.
저는 원작소설을 보지 않고 7부작 미니시리즈를 먼저 봤지만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결론은 퀴어멜로라고 썼는데 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리뷰는 참으로 단순하다고 생각되거든요. 재미 없었어요. 솔직하게. ㅋ
somewhere 2012/02/15 03:17 #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성정체성은 알 수 없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탁월한 연출가인지 알 수 있었어요. 원작을 잘 분석했고 그 안에 담긴 정서를 그 당시의 무드로 잘 표현해냈더군요. 정말 감탄하면서 봤어요. 이 정도로 연출력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보지 않았거든요. 원작을 충분히 아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였어요. 그 점이 지금도 상당히 놀라워요. 은밀하게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감정선을 따르면 알게 만드는 이 연출의 마법이란! 진짜 근사했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