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의 실체와 <프린지>의 각인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우리는 공통된 결론을 내렸다. 불필요한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늘 그 이상을 알기 원하지만 알고 나면 피곤해질 뿐이다. 비밀을 알고 있는 내가 피곤한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상대가 나를 피곤하게 여기는 것이다. 당신들을 정말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세상에 누구도 당신을 알지 못한다. 당신이 깨우친 만큼 조금이나마 당신의 표면을 볼 뿐이다.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사람들이 공통된 반응을 보인다. 블럭버스터의 특성상 장르의 설명은 불가피하고 등장인물들은 모두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논지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만들어졌다면 불필요한 설명이 많다고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당신은 <프로메테우스>를 진심으로 원한 것이 아니다. <에이리언>의 프리퀄이 되었든 리부트된 평행우주의 세계든 나올 수 있는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선조가 신이 아닌 외계인이고 그들은 인간을 만들고 좋아하는 부류와 싫어하는 부류도 나뉘어졌다. 인간을 증오하는 외계인들은 인간을 말살시킨 생물병기를 계발하는 데 그것이 '에이리언'으로 통하는 바로 그 괴물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인간사를 논하러 간 지구의 탐사대는 그 광경을 보고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지옥의 여정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여성은 신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의 믿음의 원칙인 것이다. 유전자가 같다고 해서 자신을 만든 창조자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나쁜 부모를 만난 것일 뿐. 인류를 만든 착한 창조자를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 어떤 경우이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시시할 수 밖에 없다. 프로메테우스를 타고 지구를 떠난 탐사대만큼이나 같은 인간으로서 인류의 기원에 대해 궁금증을 품고 있었고 그 기원의 순간 지혜를 얻고 싶었을 것이다. 신을 만나서 인간을 초월하고 싶은 열망. 그것이 피터 웨이랜드의 욕망이다. 신이 되고 싶은 인간. 초월자가 되고 싶은 인간. 그러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분명히 있다. 실체를 보는 것이다. 오컬트무비에서 악령에 쓰인 나약한 인간들을 해방시키는 엑소시스트들은 악마의 이름을 호명하고 그들을 인간의 육신에서 쫓아낸다. 여기서 악마의 이름을 아는 것은 공포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 안다는 것은 더이상 공포로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단 상대를 알면 더이상 같은 식으로 당하지 않게 되니까. 인류를 만든 창조자를 만났을 때 경외심은 그런 지각을 통해 시시한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인간이 원하는 욕망을 이뤄지는 마법 상자가 아닌 그들은 인간 스스로 나아가길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인간사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그들이 잘 성장하길 원한다. 그러나 모든 부모가 착하지 않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듯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가에 따라서 자식들의 미래는 결정된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는가. 신이 만들었든 외계인이 만들었든 우리 인간은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면 될 뿐이다. 신이 절대자가 아니다. 오히려 요즘의 판타지 장르든 과거의 신화든 인간의 믿음으로서 신은 힘을 얻고 살아간다. 그들은 육체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에 대해 언제나 욕망한다. 인간의 열등한 존재처럼 인식되었지만 사실 신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머문다면 인간은 곧 우매한 존재가 될 뿐이다. 깨어난 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 인간은 매 순간 어떤 위협과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인간을 만든 그 무언가. 

공포의 실체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력해지는 것처럼 <프로메테우스>의 인류의 기원 역시 밝혀지는 그 순간 더 이상 매력적인 그 어떤 것이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그 모든 비밀이 밝혀진 다음에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인간의 삶을 살아갈 뿐이며 살아가야 한다. 


<프린지> 시즌 4는 여기서 어떤 해답을 들려준다. 모든 것이 불명확하고 위험으로 가득찬 세계. 자신의 존재마저도 지워질 수 있는 세계. 그러나 그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 인간이기에 가능한 사랑이라는 감정. 소울메이트라 부를 수 있는 피터와 올리비아는 서로 다른 세계에 있어도 서로를 사랑했던 경험과 기억의 잔상만으로 온전하게 상대를 호명하게 만들고 완전하게 만든다. 왜 살아가야 하는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진정한 나를 완성시킬 수 있는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진짜 우리가 사는 이유가 아닐까. 아니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덧글

  • FlakGear 2012/06/11 01:08 #

    왠지 그렇기도 합니다. 모르는것이약이기도 아는것이 힘이기도 한 기묘한 세계말이죠. 질문은 끝이없고 불평도 끝이없고 두려움도 끝이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공간에 대한 불안정이나 그런 공포감에 휩싸이곤해서... 그러고보니 그래서 언젠가부터 프린지를 못보고있었군요 ㅡㅂ ㅡ

    어쨋건 그렇다하니 용기를 내서 봐야할지... 뭐하나볼때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체질이라서 우주나 차원관련된 것을 잘못보면...
  • somewhere 2012/06/11 01:11 #

    가끔 주위에서 저를 볼 때 사람들이 혼동하는 경우가 있어요.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사는데 대화를 나눠보면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종종 저를 오해하거나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상당히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서. 드라마든 영화든 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법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제법 중심 잡기가 쉬워졌어요.
  • FlakGear 2012/06/11 01:17 #

    프로메테우스에 관해선 뭔가 철학적인 답을 찾기보단 관객들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즐거움을 찾으러 떠났으나 별로 흥을 못느끼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 somewhere 2012/06/11 01:21 #

    그런 점도 있어요. 사람들은 <에이리언>처럼 뭔가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공포 체험을 하길 원했던 것 같더군요. 어떤 분은 <디센트>의 밀폐된 공간안에서의 공포를 즐기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살짝 기분이 상하더군요.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것을 원하고 있구나. 조금 더 단순하고 말초적인 것들. 그렇게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면 정말 시스템이나 환경 모두 위험해지거든요. 여기서 더 악화되는 것을 정말 원하는지... 영화가 단순한 2시간의 눈요기 또는 시간 죽이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런 분들의 생각일 뿐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역시 공존하기란 정말 어려운 문제죠. :)
  • 당고 2012/06/15 17:33 #

    <프로메테우스>를 어제 봤어요. 기대 이상의 영화였죠.

    아무도 곁에 없을 때 곁에 있는 존재.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소울메이트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상은 소울메이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요.
    데이빗이 그런 대사를 치잖아요. "당신이 죽었을까 봐 두려웠어요."
    인간의 공존이랑 결국 필요에 의한 것이고, 결핍과 결핍의 만남이며, 외로움의 해소를 위한 것인지도요.

    영화를 잘 보고 들어와서 그 영화에 대해 쓰신 일련의 글들을 볼 수 있으니 참 좋아요.
  • somewhere 2012/06/15 18:14 #

    안드로이드 데이빗도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죠. 아무리 프로그래밍된 기계 인간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감정 자체가 없다고 볼 수 없어요. 인간이 만든 것이니 당연한 것이지만요.

    결국 제가 찾는 궁금은 내 사람인 것 같아요. 소울 메이트이기도 하고.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난 직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고 미드 <프린지> 시즌 4를 보면서 그런 내용이 직접 나오니까 더 확실해지는 것 같고....

    가장 어려운 게 내 사람인 것 같은데... 아.... 너무 어려워요. 그걸 찾는다는 것이...

    그리고 영화 리뷰는 그냥 쓴 거에요.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사실 좀 장황하잖아요. 정리된 것을 보여주기 보단 있는 그대로 내 안에 있는 복잡함을 그대로 쓰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리허설 역시 공연을 바로 시작하는 기분 있잖아요. 분명히 한번 거르고 또 정리해서 적으면 더 담백하고 정제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요즘은 다시 좀 흐트러진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게 정말 지금 내 모습이고. 어차피 그 글을 읽는 분들은 알아서 다 필터링할 것이고...

    아무튼 일련의 글들이 조금이나마 영화를 보고 와서 읽기에 좋았다니 저로서는 기분 좋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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